[스크랩] 우금산, 개암사의 추억 하나..
아침 여섯시.
어김없이 알람은 꿈꾸는 신경을 자극하고...
오늘이 올해의 마지막 산행임을 알면서도 어제의 무리한 산행때문 이었는지 알람을 끄고 다시 벌러덩..
몇소금 숨을 몰아쉬면서 생각하길.. "맞아, 어제 메세지까지 왔었지."
호남 40,50에서는 물론 다른 산행팀에서 조차 올해엔 이상하게 덕유쪽산행이 뒤틀려진 터라
우연찮게 알게된 모 산악회의 남덕유산행에 만사제키고 동참을 하였던 어제 산행.
사진으로만 접하던 남덕유의 산호보다 아름다운 눈꽃들과 멀리 펼쳐진 상고대의 환상적인 아름다움.
더하여 앞이 안보일 정도의 눈보라까지 마음껏 만끽하고 내려오는길에 울리는메세지 음악.
"내일 우금산 산행에 전북에서 대형버스 대절키로 ..많은 참석바람"
요즘 금연의 즐거움에 싱글벙글한 <산조아>님의 메세지다.
그렇지 않아도 마지막 정기산행인데다가 우금산보다는 개암사가 보고파서 꼭 참석하려던 산행.
하지만 어제의 산행이 몸을 이렇게 무겁게 만들었을 줄이야...
메세지 보내주신 <산조아>님을 생각하지 않았다면 주저앉을 핑게로는 딱인것을...
전전주 정기산행에 빠진 터라 오랜만에 만나는 광주님들과의 조우. 오랜만에 뵙는 <아하리트>님, <진달래>님을 비롯, 모두가 정겹다.
겨울이지만 기대하던 눈대신에 햇살이 다정스럽다.
발길에 밟히는 낙엽의 바스락대는 소리와 자신의 모두를 아낌없이 보여주듯 헐벗은 나무에게선 연민이..
문득 나태주의 '내가 사랑하는 계절' 이라는 글귀가 떠오른다.
- 내가 제일로 좋아하는 계절은 낙엽져 나무밑둥까지 드러나보이는 늦가을부터 초겨울 까지다.
그 솔직함과 청결함과 겸허를 못견디게 사랑하는 것이다. - 그럴 수도.....
첫 출발은 완만한 산을 오르는 기분이라 모두들 가볍게 흥얼거리듯 올랐으나 능선에서부터 불안감이...어째 오르자마자 하산하는 기분이다.
아니나 다를까... 우측능선을 타야할 것을 좌측으로 내려오고 말았다.
기차바위는 구경도 못하고 감교리쪽으로 내려왔으니...
하루에 두번 산행을....?? 다시 시작하는 산행.
시작부터 감(?)이 좋다. 왜냐구? 서리를 맞아 입안에서 슬슬 녹는 감이 무더기로 달려있는 감나무를 발견한 꾼(웰빙님)이 털어온 감을 두어개씩 먹었으니 말이지.. ^^*
그래, 산행이란게 아득바득 정상으로만 씩씩거리며 오르는것만 능사는 아닌것이여, 가끔씩 주변도 둘러보고 무공해의 천연식품도 맛도 보면서 하는게 산행의 진짜 맛이지..
이렇게 자위하며 길같지도 않은 비탈을 헐떡 헐떡 오른다.
<지현>님이던가? 누군가.. 올 여름 길을 잃고 하늘이 보이지 않는 산속을 헤치고 올랐던 방장산의 기억을 내놓는다.
길을 잃었어도 누군가 의지할 사람과 함께라면 그것은 나중엔 추억인가보다.
문득 인생도 그러할까? 생각하다 고개를 가로저어 땀을 떨군다.
후미 책임자인 <빈콩깍지>님의 우스개 농을 들으며 흥겹게 오르다보니 어느덧 우금산성을 걷고있다.
올 가을 단풍산행을 했던 월명암이 있는 내변산을 주욱 일견한다.
의상봉 넘어엔 서해바다가 아련하고...
울금바위를 돌아내려가는 내리막길.
어차피 지척거릴것, 울금바위나 올라갔다오자는 내 말에 선뜻 응해주신 <빈콩깍지>님.
뽀송뽀송한 바위는 미끄럽지않아 오르기 쉬운듯 했지만 위험하니 내려오라는 <빈콩>님의 말을 듣고 그냥 중간에 내려오고만다.
울금바위 정상에서 전체를 조망하는 즐거움을 위험과 바꾸지않은 소심함에 대한 후회를 산행끝난 뒤에도 내내 계속할 줄이야... 그땐 미처 몰랐는데...
내리막을 내려서니 베틀굴이 나오고 베틀굴을 돌아가니 그 유명한 복신굴이 나온다.
굴이 셋있는데 가운데 굴에서 원효가 수행했다고 해서 원효방이라고도 불린다.
여기서 점심. 우리산행팀 외에도 많은 산행인들이 식사를 한다.
어느님이 가져오셨는지.. 산위에서 과메기를 시식할 줄 꿈엔들 상상했으랴
겨울의 별미 과메기와 늘 그렇듯이 삶은 돼지고기와 소주를 가져오신 <풍남>님덕에 어김없이 과식을..
부른 배를 어루만지며 주변을 둘러본다.
여기가 중 복신이 멸망한 백제의 부흥을 위해 일본에 있는 왕자 풍을 중심으로 유민을 모아 항전하다
김유신과 소정방의 연합군에게 패한 곳인가... 사서에 주류성이라 일컫는...
백제의 부흥을 위한 마지막 꿈이 존재하였던 곳에 승리한 나라의 대표적 고승인 원효가 와서 절을 중창한 사실에 미루어 개암사와 울금바위가 우리나라 미륵신앙의 중심지 중 한 곳임은 분명한듯.
복신의 한이 맺힌 이곳에 백제의 후손들이 여기저기 삼삼오오 짝을 지어 기념사진을 찍는다.
'역사란 무엇인가?' '존재란 무엇인가?' 에 대한 찰나의 고민.
일부는 바로 개암사쪽으로 하산하고 나머지는 우금사을 뒤로하고 학치쪽으로 능선을 탄다.
얼마쯤 가다 뒤돌아보니 울금바위가 정말 아름답지 아니한가.
'산행이란 무조건 앞만보고 오르지말고 가끔 숨을 가누며 뒤를 돌아보라'던 말의 뜻이 와닿는 순간이다.
그 아름다움을 그냥 보내기 싫은지 <옥녀봉>님이 <하오칸>님을 불러세운다.
보는 눈은 있어서... 하오칸님 이쁜줄은 알아서리... ^^*
내내 울금바위를 조망하듯 능선길을 걷다가 내려서니 임도다.
임도을 가로질러 곧바로 숲을 내려가니 개암사 입구가 나타나고...
월정약수터를 볼려면 임도를 따라 내려왔어야 했지만 요즘 월정약수는 식용부적합이라 했으니...
개암사. 선운사의 말사.
백제의 묘련이 창건하고 삼국통일후 원효와 의상이 머물면서 중수한 곳.
대웅전과 요사채, 그리고 승방의 세 건물로 검소하다 알고있었는데, 문화재복원의 이름아래 여기저기 증축을 하여 나름대로 원형을 복원하려 애쓴흔적이...
새로 말끔히 단장한 돌축대사이 돌계단에서 울금바위를 배경으로 단체사진을 찍고 절을 둘러본다.
보물 제 292호인 대웅보전은 말그대로 보물이다.
무슨 소원을 빌었는지...
대웅전에 모신 부처님께 절을 하는 <수지화>님이 나간 대웅전 안에서 놀라움을 본다.
부처님을 모신 위에 이단으로 올려지은 목재지붕의 섬세함과 아름다움은 궂이 직업의식이 아니라도 감탄 그 자체. 오래 되어 고색창연이란 말이 딱일듯한 천정의 화사하나 추하지 않은 색조.
반야용선(극락으로 가는 배)에 용들이 꿈틀거리고, 기둥,닫집, 대들보 할 것없이 여기저기 고개를 내밀고 있는 용들의 모습은 처음보는 경이였으며 대웅전 외부의 양쪽 모서리 기둥에 새겨진 용과 처마밑에 양각된 익살스런 도깨비까지.... 왜 개암사의 대웅보전이 보물인지를 오감으로 느끼게 해준다.
승려 의겸이 그렸다는 보물 1269호인 영산회괘불탱화 의 초본은 통도사에 소장되어있어 볼 수없었지만
모작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웠으며
전북유형문화재179호인 응진전의 16나한상은 숙종3년에 부처님의 열여섯 제자를 조각한 17세기 불상의 백미라는데 최근에 새로 칠을 하였는지 약간의 이질감으로 인하여 원형의 예술성이 많이 감소된듯하여 아쉬웠다.
지장전에는 전북유형문화재 123호 청림리 석불좌상을 가운데 두고 수많은 작은 석불을 만들어 모셔두었다. 높이로 17단에 좌우로 20개쯤씩이면...680개 정도 되나??
원래는 상서면 청림리 서운마을의 청림사지에서 전해오던것을 이곳으로 옮겨 석대에 안치해놓던것을 지장전을 새로 증축하면서 지장전 안으로 모셔왔다고.
'새로운 것만이 아름다운건 아니다' 라는 생각으로 돌아나오는데 이화님과 무심님이 호랑가시나무의 빨간열매를 보며 감탄사를....
아름다움은 누구에게나 동일한 것일까?
대학다닐때 '꽃이 아름답다 는 명제는 다분히 계급적이다. ' '꽃이 아름다움으로만 느껴지는 계급이 있는 반면 꽃이 아름다움의 존재가 아닌 식량의 대용으로 인식되는 계급도 있다' '배고픈시절의 찔레꽃이나 진달래꽃이.. 감꽃이 아름다움의 존재였던가? 식용이었던가? ' 이런 논쟁을 하면서 현실을 분석한답시고 열중했던 기억이 잠시...... '온갖 비리와 부패, 위선의 대명사 이명박에게 맹목적으로 올인하는 45%의 백성들은 과연 어떤 심사일까?' 하는 생각과 어우러진다.
아름다운 산하, 역사적 사실, 정겨운 추억들과 잘 버무려져야 할 개암사가 새로움의 이질감으로 몸살을 앓는 대표격인 화장실을 뒤로하고 서둘러 나오는길에 만난 한 무리의 상록수들이 정겹다.
소나무로 착각했었는데 <풍남>님이 주목아니냐고 정정해준다.
<오늘처럼> 고문님의 주목이 구상나무하고 같은거 아니냐는 말씀에 잠시 헷갈린다.
주목은 빨간열매가 열리고 구상나무는 작은 단단한 솔방울같은 열매를 맺는다는 사실만 다를뿐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른지 영 말문이 막힌다.
새로 증축한 일주문.. 과연 이렇게 커다랗게 만들어야만 했을까? 하는 생각도 잠시, 어김없이 용이 양각되어있는 일주문을 보며 왕의 상징인 용이 중심이 되어있는걸 보면 개암사가 예전에 주류성이었던게 맞긴 맞나보다.
일주문 현판에 쓰여진 능가산 개암사 (능伽山 開巖寺) 를 보며 '어? 우금산이 아니네, 저건 무슨 글자지?' 하며 당혹해 하면서 나무목변에 넉사자 방위방자를 외워온다. 楞 네모질 능,
이렇듯 온갖 사념을 담으며 주차장에 다가오니 개암여관과 삼일운동 기념비도 보이고...주차장 입구에 변산 관광지도가 보인다.
지도를 보며 <사니조아>님이 한 마디, ... "여기가 참 좋은 곳이 많은데..."
맞다. 변산의 아름다움은 이미 국립공원이란 이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으며 일품인 변산반도의 갯벌은 비록 새만금으로 인해 상채기를 입었어도 그 아름다움은 낭중지추(囊中之錐)라 숨길수가 없다.
천일염과 젖갈로 유명한 곰소염전과 격포, 모항, 궁항, 상록, 계화도, 하섬, 위도등 아주 아름다운 해변가, 채석강, 적벽강의 신비로움, 악어동물원, 동물학대의 비판이 있는 원숭이학교까지..
조선시대 개혁파의 시조격인 반계유형원선생 유적지와 신석정시인의 고택, 매창공원등등.
허균은 홍길동전의 창작을 여기서 했으며 율도국은 위도를 가리킨다고 하지 않던가.
그뿐인가? 역사적으로 백제부흥운동의 중심지, 척양척왜를 외친 동학혁명의 시발지이자 최근의 핵폐기장 철폐운동의 그 곳.
아물 아물 기억을 갉아가다보니 문득 매창이라는 단어가...
그래 맞어! 산행내내 개암사가 누구와, 어떤 역사적 사실과 연관이 되어있었는지 가물가물한 기억을 되살리려 애썼던 고뇌가 일순간 화악 걷힌다.
개암사 하면 매창을 떠올렸어야 하는것을..
이매창, 조선의 삼대 여류시인, 아전의 서출로 태어나 관기로 있으면서 37세의 짧은 인생을 사는동안 자색이 그리 뛰어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찾아오는 조선팔도의 시인묵객들이 들끓었다는 매력적인 여자, 매창.
당대 최고의 시인이던 '촌은 유희경'과의 짧은 만남을 평생 가슴에 담고 살았던 로맨틱한 여인, 매창.
"이렇게 떠나가면 소첩은 어찌합니까?"
"세상 평안해지면 내 다시 찾으리다"
스물여덟이나 위인 유부남 유희경에 대한 애절한 사랑은 수많은 시로 남았고, 매창이 죽은 후 입에서 입으로 떠돌던 시를 아전들이 모아 매창이 죽은지 58년후인 1668년(현종9년)에 개암사에서 목판으로 만들어 <매창집>을 출간했다.
그런데, <매창집>을 찾는 이들이 너무도 많아 절집 살림이 거덜나게 생기자 목판을 불살라버렸다 한다.
정녕 아깝다.
사찰에서 기생의 문집을 발간한것도 희귀할 뿐만 아니라 당시 봉건시대 사회상으로 말미암아 여류시인의 문집을 발간한 예는 세계에서도 드문일 일텐데...
절개굳은 기생, 수절기생이라 전해지던 매창.
천하의 바람둥이였던 허균마저 '매창은 절개가 굳어 색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기록까지 남겼으니...
여자때문에 두번이나 파직을 당한 적이 있는 허균도 매창을 찾아서는 술잔만 비우고 치마는 들추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이미 허균이 매창을 만났을때는 이미 친구인 김제군수 이귀의 여자였기에 10년간을 편지를 주고받으며 글친구로 남아 개암사, 내소사, 월명암등을 함께 산책하며 시심을 공유했던것이다.
이렇게 소중한 인물,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자랑스러운 여류시인 매창을 빼고서야 어찌 개암사를 얘기할 수 있으랴 .
이렇게 즐거운 상상과 마지막 산행의 아쉬움을 뒷풀이에 담고 헤어지는 광주님들과 아쉬운 작별.
산행은 힘들지 않았음에도 오는 버스안에서의 잠깐 단잠은 꿀과 같았고 전주에 도착하여 다음을 기약하는 이별...그리고 아쉬움에 막걸리 한 잔 더...
<느티나무> 회장님, <풍남>님, <수양버들>님, <지현>님과 <느티나무>님이 추천해주신 막걸리집에서 다섯주전자.
<느티나무>님은 왠 막걸리집을 구석구석 잘도 아시는지... 막걸리에 대해 일가견이 있다고 자부하는 나도 두손 들고 만다.
막걸리를 마시면서 개암사의 마지막 비밀이 흘러나오고..
<느티나무>님이 개암사에서 사셨다는 개암죽염은 대나무속에 곰소 천일염을 넣은뒤 황토로 봉하고 소나무장작불로 아홉번 구워낸것.
굽는 동안 소금속의 독소와 불순물이 제거되고 대나무와 황토의 유효성분이 조화되는 건강염.
죽염굽는 기법은 개암사 주지스님에게만 전해져왔고 지금도 개암사의 특산물이다.
이렇게 우금산 개암사 산행은 나에게 잊혀져가는 기억의 한끝을 되잡아 오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이 어찌 고맙지 아니한가.
산행을 추천해주고 이끌어주신 <산따라>님에게 감사하는 의미로 전해지는 매창의 시 몇편 올려본다.
이화우 흩날릴재 울며잡고 이별한 님
추풍낙엽에 저도 날 생각는가
천지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도다
--가곡원류에 실린 이화우(李花雨)--
애끓는 정(精) 말로는 할 길이 없네
밤새에 머리칼이 반(半)남아 세였고나
생각는 정(精) 그대도 알고프거던
가락지도 안맞는 여윈손 보소
--님 생각, 신석정 역
봄새라 추위는 가시지 않아
볕드는 창가에서 옷을 깁노니
숙인 머리에 눈물이 떨어져
옮기는 실귀가 말없이 ?는다
--한(恨), 신석정 역
취하신 님 사정없이 날 끌어단
끝내는 비단적삼 찢어놓았지
적삼하날 아껴서 그러는게 아니어
맺힌 정 끊어질까 두려워 그렇지
--취하신 님께, 신석정 역
우금산성...
울금바위
복신굴
개암사 전경
아름다움의 극치 대웅보전
일주문
변산반도 안내도
사진은 <산따라>님의 작품을 임의로 가져왔습니다.
널리 양해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