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의선사는 무안 출신으로 정조 10년 에 나서 고종3년에 입적했다
대둔사에서 13대 종사로 꼽히는 대선사이며
간신히 명맥만 유지하던 우리 나라 다도를 중흥시켜서 다성 (茶聖)으로 불린다
속가에서는 성은 장씨 이고 법명은 의순 (意徇)이고 호는 초의 (草衣)다..
초의 선사는 강가에서 놀다가 물에 빠진것을 지나가던 스님이
건져 준 일이 인연이 되어 16세 때 나주 운흥사에서 출가했다
초의 선사는 불문에 몸담고 있었으나 그 테두리에 그치지 않고
유학,도교 등 당대의 여러 지식을 섭렵하며 다산 정약용이나
추사 김정희 ,자하 신위 같은 학자나 사대부들과 폭 넓게 사귀었고
범패와 서예 ,시 ,문장에도 능하였고,장 담그고 화초 기르는 것까지 허술히 대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초의선사에게 차와 선은 별개의 것이 아니였다
그는 차 한 잔을 마시는 데서도 법회선열을 맛본다고 하였고
차는 그 성품에 삿됨이 없어서 어떠한 욕심도 사로잡히지 않는 것이라 했다
그가 지은 동다송은 차의 효능과 산지에 따른 품질,만들고 차 마시는 법 등을 적은 것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차에 관한 책이면 동다 (東茶)즉 우리나라 차에 대한 예찬을 담고 있다
지금까지 사진은 초의 선사가 말년에 손수 차를 일구던 다원인 일지암이다
그동안 무너져 있던것을 한국차인연합회에서 옛 주춧돌 위에 새로 띠집을 지었다//
차를 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가보아야할 성지로 꼽히는 일지암
그곳 부근으로 여행을 가면 꼭 가보리라 여겼는데 번번히 놓치고 말아
이번에는 용기를 내서 찾아간 일지암.
그러나 자가용을 몰고 그곳에 올라가는 것은 죽음을 각오하고 가는 위험천만 길이였다
전국을 답사 하면서 차를 몰고 다니다 딱 세 번 위험한 고비를 넘겼는데
이곳이 그 세 번째 코스였다..지금도 그날을 생각함 아찔함을 느낀다..
십여년 전 초의선사 책을 보고 그분을 좋아했었다
그분의 차에 대한 사랑과 내가 존경하는
다산 정약용을 스승으로 모시고 따랐고. 동갑인 추사 김정희 와의 우정이
있었고,그들이 함께 차를 마시고 학문을 논하고 다정히 이야기 하던
다산 초당은 해남에서 자가용으로 30 분여를 달려야 가는 곳인 강진에 있었다,,
그들의 우정은 먼길도 마다하지 않고 왕래를 했던 초의선사가 있었기에
유배지에서 쓸쓸한 생을 보내고 있는 정약용은 초의 선사에게 위안을 느꼈을 것이다.
해남 대둔사 (대흥사 ) 산 가파른 중턱에 위치한 일지암
봄비가 가늘게 내리는 안개낀 일지암을 아마도 난 평생 못잊을 것이다
ㅎㅎㅎ 그런 무모한 도전을 다신 하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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