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스크랩] 귀거래사(歸去來辭)

보고잡퍼 2019. 1. 29. 22:57

 갈뫼님이 팔공산 자락 텃밭을 분양하셔서 여러 회원님들이 고맙고 즐겁게 농토를 나누었다는 소식을 듣고 매우 기분이 흥겨웠다. 동참을 하지 못한 것이 아쉬울 따름이지만, 같은 취미를 즐기는 글벗들이 땅을 갈며 자연 속에서 교류한다는 것이 한 폭의 산수화처럼 아름다운 생각이 들었다.

 한자에서 '순수 직업인'과 '취미생활'을 나누는데, 고기잡는 어부의 경우 '漁夫'라고 하면 직업인이고 '漁父'라고 적으면 취미로 하는 사람을 뜻한다고 하니, 우리 청묵회 농사꾼도 '農父'라고 불러야 맞을 듯하다. 땅은 거짓을 말하지 않고 하늘의 도리를 태양을 향해 토해낼 뿐이니, 생업을 도모하며 흙과 때때로 더불어 즐기는 것이 어찌 풍류의 경지라 아니 하겠는가? 하여 가장 대표적인 귀농시(歸農詩)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이 봄철에 실어 본다.


志木 이영찬, 歸路(귀로)

 

 중국 남북조 시대 진나라의 시인 도연명(陶淵明, 365∼427)은 그의 나이 마흔 한 살 때에 팽택현령(彭澤縣令:지금으로 치면 군수)자리를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 때의 심경을 240글자의 초사체(楚辭體) 문장으로 지었다. <귀거래혜(歸去來兮)>로 시작되는 제1장은 관리생활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는 심경을 읊었고, 제2장은 집에 도착한 기쁨을 노래했다. 제3장은 고향에서의 생활과 그곳에서 얻은 철학을 담았으며, 제4장은 자유를 누리면서 자연의 섭리에 몸을 맡겨 살아가는 것이 좋겠다는 자신의 모습을 노래했다. 도연명은 사직을 하면서 누이의 제사에 참례하기 위한 것으로 그 이유를 대었으나, 이 시에서는 그에 관한 이야기나 조정 대신에 대한 불평은 찾아볼 수가 없다. 


 자신의 기질과 성품으로 보아 벼슬살이를 하고 싶지 않았던 터에 관직을 그만둘 핑계가 생긴 셈이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어떠한 원망이나 불평도 없으며 세속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도 들어있지 않다. 그냥 담담하게 자신의 소망인 농사일을 하는 즐거움만 밝히고 있다.


 역사서 기록에 보면, 관청에 근무할 때 독우(督郵:감독관)이 순찰온 적 있었다. 부하 아전이 그에게 의관을 바로 하고 예를 갖추어 맞아들이라고 말하자, "내가 다섯 말의 쌀 때문에 허리를 굽혀 향리(鄕吏:시골 관리)의 소인(小人)을 맞이할 수 없다"고 잘라 말하고 즉시 인수(印綏:관리의 도장)를 내어주고 벼슬자리를 물러났다고 하니 매우 거리낌없고 소탈하며 세상 명리(名利)에 초월했던 이가 아닌가 생각이 든다.

 

 

歸去來辭(귀거래사)

                                                             陶淵明(도연명)

 

歸去來兮 귀거래혜
돌아가자꾸나!
(벼슬살이 그만 두고 내 고향 전원(田園)으로 돌아가자꾸나!)


田園將蕪胡不歸  전원장무호불귀  
손 볼 사람 없어 전원이 온통 거칠어지려 하는데 아니 돌아가고 어쩌리!

 

旣自以心爲形役  기자이심위형역  
고귀한 이 마음 값 있는 일에 쓰이지 못하고
제 입의 구종 노릇에 허덕이게 버려 두었던 지난날의 잘못된 생각,

 

奚추창而獨悲  해추창이독비    
하지만, 그렇다고 어찌 지나간 한 때의 잘못에 얽매여 넋 놓고 슬퍼만 하고 있으랴!

*추(心+周), 창(心+長)


悟已往之不諫  오이왕지불간   

이왕에 잘못된 일은 뉘우쳐도 소용없는 일,

 

知來者之可追  지래자지가추   
앞으로 다가오는 일만은 지난 날을 미루어 얼마든지 고쳐나갈 수 있겠지,


實迷塗其未遠  실미도기미원    
사실로, 벼슬 길 험한 길에 잘못 들어
한동안 내 갈 길을 잃고 헤매었지만,

 

覺今是而昨非  각금시이작비    
그래도 아직은 깊이 들지는 알았으니......
분명히 깨달아 알겠구나.
(벼슬살이 그만 둔 지금은 참으로 잘한 일이요,
제 입에 구종(육체의 노예) 노릇하던 어제는 진정 잘못된 일임을)

 



藍丁 박노수, 高士(고사)

 

舟遙遙以輕양  주요요이경양   (양:風+楊에 木뺀 것)
배는 흔들흔들 고향을 바라보며 가벼이 떠가는데,


風飄飄而吹衣  풍표표이취의    
바람은 한들한들 옷자락을 헤치네.


問征夫以前路  문정부이전로  
예서 고향까지 얼마나 남았을까 하고
나그네 붙잡고 남은 길을 물어 가는데.


恨晨光之熹微  한신광지희미   
(해 떨어지기 전에 집에 닿기는 글렀는가?)
새벽 빛이 어느새 어둑어둑 땅거미가 지니
서운한 마음 말이 아닐세.

 

乃瞻衡宇  내첨형우        
이윽고 낯익은 저기 저 허술한 대문과 오두막집

 

載欣載奔  재흔재분        
어찌나 기뻤던지 한숨에 뛰어갔네.

동僕歡迎  동복환영 (동:人+童) 
심부름꾼 사내 아이는 반가워 어쩔 줄 모르고,
    
稚子候門  치자후문   
어린 것들은 날 기다려 문에 서서 초조하다.
  
三徑就荒  삼경취황        
정원을 둘러보니 황폐해 가고 있는 세 갈래 작은 길

 

松菊猶存  송국유존        
소나무와 국화는 날 보란 듯 푸르름을 자랑하며 꿋꿋한데,

 

携幼入室  휴유입실      
어린 것들 손 잡고 방으로 들어서니

 

有酒盈樽  유주영준    
언제 벌써 빚었던가. 항아리에 술이 가득하네.

 

引壺觴以自酌  인호상이자작    
술 항아리 옆에 끼고 잔 끌어다 혼자서 마시며,

 

眄庭柯以怡顔  면정가이이안    
정원에 우거진 나뭇가지를 둘러보며
얼굴에 가득 기쁨이 넘실거리네.


倚南窓以寄傲  의남창이기오    
(세상에 거리낄 게 무엇인가)
햇빛 밝은 남녘 창에 기대어
버젓이 앉았으니,

 

審容膝之易安  심용슬지이안    
(이제야 참으로 알겠구나)
무릎 하나 들일 만한 이 작은 집에도
벼슬살이 보다 마음 편안함이 있는 것을,

 

園日涉以成趣  원일섭이성취    
날마다 정원을 거닐어 보니
거닐수록 멋이야 더욱 새로워라.

 

門雖設而常關  문수설이상관    
문이야 달아놓으면 무엇하겠는가
찾아오는 사람 없어 언제나 굳게 닫겨 있는 것을,

 

策扶老以流憩  책부노이류게    
지팡이에 늙음을 의지하여
발길 멎는 대로 쉬다가,

 

時矯首而遐觀  시교수이하관    
가끔 머리를 들어 먼 하늘을 바라보노라.

 

雲無心以出岫  운무심이출수    
구름은 무심히 산 굴 속을 돌아나오고,

 

鳥倦飛而知還  조권비이지환    
새도 날기에 지쳐서 제 집으로 돌아오는구나.

 

影예예以將入  영예예이장입 (예:醫에 西빼고 羽넣음) 
햇빛은 어둑어둑 서산에 떨어지는데

 

撫孤松而盤桓  무고송이반환    
한 그루의 소나무 그 푸르른 절개가
내 마음인 양 어루만지며 발길 차마 못 떼네.



歸去來兮  귀거래혜        
돌아왔노라.
(돌아가고파 돌아왔는데 다시 무슨 미련 있으랴.)

 

請息交以絶遊  청식교이절유    
이제부터는 세상 사람들과 교제를 끊고 사귀지 않으리라.

 

世與我而相違  세여아이상위    
세상은 나를, 나는 세상을 이렇게 서로 잊었는데,

 

復駕言兮焉求  복가언혜언구   
여기서 다시 수레에 멍에 메어(벼슬길에 나가서)
무엇하겠는가?

 

悅親戚之情話  열친척지정화
참 마음을 주고 받는 친척들과의 정다운 이야기가 내 기쁨이요.

 

樂琴書以消憂  낙금서이소우    
거문고와 책만이 내 시름 다 실어 보내는 즐거움이라.

 

農人告余以春及  농인고여이춘급  
농사꾼이 내게 와 봄이 왔다 일러주니,

 

將有事於西疇  장유사어서주    
나도야 서쪽으로 밭갈이 가야겠네.

 

或命巾車  혹명건차        
어느 때는 헝겊 씌운 수레 타고

 

或棹孤舟  혹도고주
어느 때는 외로이 배 한 척 띄워


旣窈窕以尋壑  기요조이심학    
험한 산길을 따라 언덕 너머 달리고,

 

亦崎嶇而經丘  역기구이경구
저 깊은 골짜기 시냇물을 찾아드네.

 

木欣欣以向榮  목흔흔이향영   
산에는 나무마다 봄이 즐거워 마음껏 부풀어 오르려 하고,

 

泉涓涓而始流  천연연이시류    
얼어붙었던 샘물도 봄 소리에 녹아 졸졸졸 흐르기 시작하네.


善萬物之得時  선만물지득시    
때를 얻어 흥겨운 만물을 부러워하며

 

感吾生之行休  감오생지행휴    
이 내 인생의 갈수록 가까워지는 저 안식처(무덤)를 느끼네.

 

已矣乎  이의호       
(아, 인제 모든 것이 끝이로다!)
다 그만 두어라!

 

寓形宇內復幾時  우형우내복기시  
이 몸이 이 세상에 몸 붙여 둘 날이 앞으로 몇 해나 되겠기에,

 

曷不委心任去留  갈불위심임거류  
남은 인생을 내 어찌 내 마음대로 자연의 죽고 삶에 맡기지 않겠는가?

 

胡爲乎遑遑欲何之  호위호황황욕하지
무엇 때문에 서둘러 이제 다시 무엇을 찾으러 어디를 가고자 하겠는가?

 

富貴非吾願  부귀비오원      
부귀는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요,

 

帝鄕不可期  제향불가기      
그렇다고 임금님 계신 서울이야 바라지도 않는 일.

 

懷良辰以孤往  회양진이고왕    
따뜻한 봄이 오면 혼자서 동산을 거닐기도 하고,

 

或植杖而耘   혹식장이운자 
때로는 지팡이를 밭에 꽂고 김 매고 북도 돋우어 주리라.

 

登東皐以舒嘯  등동고이서소    
또 어느 때는 동녘 언덕에 올라 조용히 시를 읊어도 보고,

 

臨淸流而賦詩  임청류이부시    
맑은 시내가를 따라 시를 지으며 세월 보내어라.

 

聊乘化以歸盡  요승화이귀진    
조화의 수레를 타고 이 생명 다하는 그대로 돌아가니,

 

樂夫天命復奚疑  낙부천명복해의  
주어진 천명을 마음껏 즐길 뿐,
여기에 다시 무엇을 의심하고 주저하랴!

 

* 시가 매우 길어 서예 글감으로 쓰기에는 많은 듯 하나,

전시회에 보면 이 글 중 마음에 드는 구절만 택하여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냥 복사해 두고 가끔 감상하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밑에 石艸 최경춘 선생의 전서 작품을 싣습니다.









출처 : 靑墨會
글쓴이 : 달솔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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