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계폭포, 개암사, 이매창, 허균...
보안면 우신마을에서 북쪽으로 1km 지점에 변산 4대 사찰중 하나였던 선계사가 있었던 선계안 분지가 있다. 비가오면 분지에서 물이 흘러 선계바위에서 물이 떨어져 폭포를이루니 이것이 바로 선계폭포이다.
이 폭포는 이성계가 성계골에 머물면서 도를 닦고 수련을 하였다는 설에 의하여 성계폭포라 부르는 이도 있으나 정확한 근거는 없습니다. 주변 호수의 맑은물과 경관이 수려하며 반계 유형원선생의 유적지 및 부안김씨 종중 고문서가 있다.(부안군청 참고)
선계폭포
이곳은 문학에도 박식한 기생 이매창과 홍길동의 작자 허균이 서로의 교분을 두텁게 하던 장소로 홍길동전이 이곳 정사암 터에서 변산을 무대로 삼아 집필하였다고 하며 홍길동에서 나온 이상향 율도국이 낚시로 유명한 위도라는 설도 있다. 그리고 이곳의 약수는 남성의 기를 일으키는 효험이 있다고 하며 많은 사람이 찾아오는곳이기도 하다.
산중턱 반계 유형원의 유적지에서도 비스듬히 바라보면 잘 보인다.
전북 부안군 보안면 우동리는 조선 후기 실학의 선구자로 일컬어지는 교산 허균과 반계 유형원이 반세기 시차를 두고 살면서 ‘홍길동전’과 ‘반계수록’ 26권을 저술했던 명소다.
허균은 소설로, 유형원은 논리로 당시 사회의 모순과 아픔에 대한 해결책을 만들면서 우리나라 실학을 태동시켰다. 허균이 우동리를 떠난 지 41년 뒤, 반계 유형원은 1652년부터 당시 사회가 안고 있는 모순을 개혁하고 부국부민을 바탕으로 한 이상적인 국가 건설의 이론서인 ‘반계수록’을 썼다. 이들의 개혁사상은 성호 이익, 다산 정약용에게 이어짐으로써 이후 근세 우리나라의 정신적 기틀을 마련했다. ▲ 전북 부안 우동리의 선계폭포 매창(梅窓)과 촌은(村隱) 유희경과 허균의 이야기 ▲ 부안읍내 매창공원에 안에 서있는 매창시비 ▲ 우동제 옆의 굴바위 (옥녀봉, 용각봉 등산로입구) 매창은 허균을 다시 만나 함께 노닐며 그의 영향을 받아 참선을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허균은 12월에 정3품 승문원 판교의 교지를 받고 다시 서울로 올라갔다. 계랑에게 어찌 그윽하고 한적한 곳에서 부르지 않고 부윤의 비석 앞에서 불러 남들의 놀림거리가 되셨소. 석 자 비석 앞에서 시를 더럽혔다니, 이는 낭의 잘못이오. 그 놀림이 곧 나에게 돌아왔으니 정말 억울하외다. 요즘도 참선을 하시는지. 그리움이 몹시 사무칩니다.
지금도 중수정사암기(重修靜思菴記)에서 허균이 묘사한 것처럼 ‘선계폭포 아래로 시냇물이 바다로 흐르는’ 등 자연환경이 그대로다.
부안읍의 진산인 성황산에 있는 서림 공원 입구에 조선 중기의 여류 시인 매창(梅窓)의 시비가 있다. 시비공원은 읍내 매창이 뜸 "매창공원"으로 새단장을 하였다.
이 무렵 매창과 가깝게 지낸 사또가 있었는데 그가 떠난 후 고을 사람들은 그를 기리는 비석을 세웠다. 매창이 그를 그리며 비석 옆에서 거문고를 뜯으며 <산자고>(山 )의 노래를 불렀는데 이를 두고 '매창이 눈물을 흘리며 허균을 원망했다'는 소문이 났다. 다음은 이 소식을 접한 허균이 매창에게 보낸 편지이다.
계랑이 달을 보면서 거문고를 뜯으며 '산자고새'의 노래를 불렀다니,
기유년(1609) 정월 허균
매창은 부안읍 남쪽에 있는 봉덕리 공동묘지에 그와 동고동락했던 거문고와 함께 묻혔다. 그 뒤 지금까지 사람들은 이곳을 매창이뜸이라고 부른다.(지금의 매창공원)
▲ 내소사와는 달리 절같이(?) 조용한 능가산 개암사
그가 죽은 후 45년 후(1655)에 그의 무덤 앞에 비석이 세워졌고, 그로부터 다시 13년 후에 그가 지은 수 백편의 시들 중 고을 사람들에 의해 전해 외던 시 58편을 부안 고을 아전들이 모아 목판에 새겨 '매창집'을 개암사에서 간행하였다. 당시 세계 어느 나라를 둘러보아도 한 여인의 시집이 이러한 단행본으로 나온 예는 없다. 시집이 나오자 하도 사람들이 이 시집을 찍어달라고 하여 개암사의 재원이 바닥나기도 했다고 전한다.
▲ 반계 유형원 선생 유허지 올라가는 길
반계 유형원 유적지는 큰길에서 산비탈을 약 20분정도 걸어올라가야 한다. 돌보는이가 없어서인지 건물은 잡초더미속에 방치되어있었다. 여기서 바라보는 경치는 그야말로 거칠것이 없는 일망무제다.
▲ 반계유형원 유적지(부안 보안면 우동)에서 본 곰소만.
부안 보안면 우동"실학의 메카 반계골"
실학의 선구자 유형원(효종,현종1622~1673)님. 다산 정약용과 더불어 실학에 있어 빠뜨릴 수 없는 실학의 아버지인 그의 집터 및 그를 기리는 비가 있는 곳. 원래 우동이란 이름은 우반동에서
비롯되었으나 일제 때 우동으로 바뀌었다.
저서로는 토지, 군대 및 국정 전반에 관한 문제를 서술한 '반계수록'(전26권)이 있으며 이것은 훗날 실학사에 큰 영향을 주었다. 생가 터는 지리학상으로 명당으로 손꼽히는 명당터이다.
▲ 안내문
개암사(開岩寺)
상서면 감교리(甘橋里) 소재하는데, 고려 숙종(肅宗) 때에 창건한 절이다. 조선 초기에 건립된 대웅전(大雄殿:보물 292), 동종(지방유형문화재 126) 등이 있다. 북동쪽 산봉우리의 울금바위 유명하다. 울금바위 안엔 3개의 굴이 있다. '원효방'이라고 이름붙은 가장 큰 굴 안에는 석간수(옥천)가 흘러나오는데, 여기서 원효대사가 수도했다고 한다. ·
▲ 변산 일대 명산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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